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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소멸
▒ 코끼리의 소멸을 경험한 후로 나는 곧잘 그런 생각이 든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 행위가 초래할 결과와 그 행위를 회피함으로써 초래될 결과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주변 사물들이 그 본래의 정당한 밸런스를 잃어버리고 만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코끼리 사건 이후 나의 내부에서 뭔가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려 그것으로 외부의 사물들조차 기묘하게 비치는 건지도 모른다. 그 책임은 아마 내 쪽에 있을 것이다.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 무의미해, 하고 나는 생각했다. 몇 주일이나 몇 개월, 혹은 몇 년, 그녀들은 내 아파트에 머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들은 다시 모습을 감출 것이다. 요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바람에 꺼져 버리는 '봉화'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갈 것이다.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무의미 하다.
그것이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나는 쌍둥이가 없는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는 동안 못 견디게 여자를 안고 싶어졌지만, 누구를 안아야 좋을지 몰랐다. 누구라도 상관없었지만 그 중의 한 사람을 섹스 상대로 구체적으로 정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좋지만, '아무'여서는 곤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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