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2009)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 | 2009-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소설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상문학상 작품집!2009년 제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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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 김연수

 

▒ "이걸 선생님이 어떻게 받겠어요. 제 건 지구만 한데."

 행복은 자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고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그걸 공처럼 가지고 노는 일은, 그러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 만약 실제로 그가 코끼리에게 갑자기 그 공을 던졌다면, 코끼리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곤충들은 그렇게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말할 줄 아는 코끼리라면 그렇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죽으니까.

 

▒ 그날 밤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랜만에 마신 술로 완전히 취해버린 그는 콧물 눈물 다 쏟아내며 울었다. 기러기들이 외치듯이. 친구의 품에 안겨서 꺼이꺼이. 그녀 때문이었다. 그와 그녀도 아예 처음부터 서로 오해한다고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해한다고, 서로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했다니. 그런 식이라면 커츠 대령도, 백혈구도, 코끼리도 다 이해해야만 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는 지네도, 베짱이도, 수컷 사마귀도 이해해야만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건 원래 질문은 있지만, 답은 없는 것이어서, 그게 더 슬퍼서 꺼이꺼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꺼이꺼이.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친구의 말이 너무나 슬퍼서, 또 꺼이꺼이. 힘을 주느라 얼굴이 벌게진 코끼리가 자기 심장을 마구 밟아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꺼이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들처럼.

 

▒ "그런데 그보다 더 싫은 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죠. 그건 일단 네 몸이 나은 뒤에 그때 얘기하자. 그럼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내 몸은 이제 영영 낫지 않아. 지금 얘기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걸어다니면서 나는 그걸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축제 - 이혜경

 

▒ "옴 샨티는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뜻해요. 그걸 세 번 반복하는 건, 정신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 그리고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때문에 생긴 고통에서 풀려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는 뜻이지요."

 

 

봄날 오후, 과부 셋 - 정지아

 

▒ 그러나 백태 낀 눈이 빚어내는 착각이 그녀에게는 잠시의 현실이다.

 

▒ 막내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그녀는 읍내 고등학교 선생과 눈이 맞았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박카스를 사먹으러 오는 남자였다. 역사 선생이었던 그 남자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하얬다. 박 조수의 손도 그랬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그녀는 남자에게 흠뻑 빠졌다. 남자가 혼잣몸이었으면 자식들이야 뭐라든 재혼을 했으리라. 애석하게도 남자는 유부남이었고 결혼 직후부터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우유부단하여 조강지처를 버릴 위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체념했으나 남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박카스를 사로 약방에 들었다. 박카스를 건내주다 손이 스쳤을 때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저르를 떨렸다. 그 떨림을 예민한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남자가 길고 섬세한 손으로 덥석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고 온몸에 힘이 빠져 그녀는 그만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여름이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택시를 불러 타고 옆 도시로 달려갔다. 가는 내내 남자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바닥이 흠뻑 젖었다. 손이 젖는 만큼 몸이 달아올랐다.

 

 

두 번째 왈츠 - 전성태

 

▒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의 나체 사진을 표지 디자인으로 삼고 자의식의 언어들로 충만한 그의 두 번째 시집을 선물로 받고 나서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했다기보다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 심성이 여리고 착한 냐마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그것을 호감으로 착각한 사내들이 날아들었다가 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호의와 호감을 구분 못하는 남자들이 바보이지 냐마를 성토할 이유는 없었다.

 

 

신천옹 - 조용호

 

▒ 돌이켜보면 답답증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질식해버릴 것 같은 때도 많았다. 생활이 나를 붙들어 맸다.

 

 

완전한 항해 - 윤이형

 

▒ 다른 세게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세계에는 루가 없었다.

 창은 전속력으로 루를 빋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그리고 마침내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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