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규항 (야간비행,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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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줍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 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선택했고 그런 삶의 발악이 더러는(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세상에 진짜 유익을 주는 일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내 삶을 전진한다.


지식인들, 록을 고르다

▒ 알고보니 대중예술 평론이란 실제 대중예술이나 대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지식인이 쓰고 역시 지식인들이 읽기 위해 만들어 낸 대중예술의 해석판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역사' 가 아니라 '역사책' 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 댄스 하는 그들,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이른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준비해 놓았나. 모든 갓난아이들이 20년 동안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이름의 '계급 결정시험'만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대인국에서 바로 그 '계급 결정시험'을 목전에 둔 10대라는 소인들이 춤을 춘다. 그들의 적은 그들을 뺀 전부이며 그들은 예술의 사회성을 모르며 역사적 전망을 모르며 어떤 종류의 전략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록정신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록정신으로 충만하다.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우리 안에 남은 파시즘

▒ 파시즘은 어디에 있는가. 파시즘은 이른바 5,6공 인사나 한국논단 같은 극우집단에만 남아 있는가. 천만에, 파시즘은 우리 안에도 남아 있다. 파시스트 치하에서 몇십 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파시스트와 닮아 갔고 파시즘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구제금융을 부른 '국가'가 그 원인을 '국민의 과소비'라 둘러대면 '국민'은 가슴을 치며 금가락지를 빼들고 방송국에 간다. '국민'의 대다수인 근로대중들이, 30여 년을 경제개발 현장에서 뼈빠지게 고생만 하던 사람들이 요 몇 년 아이들과 놀이동산 몇 번 가고 갈비도 사먹고 한 것이 구제금융의 원인인가. 우리 안의 파시즘은 우리를 한없이 비굴하게 만든다.

▒ 세상의 모든 파시즘은 언제나 '민족' 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북에 가본 강남의 중딩이 통신에다 소감을 썼다. "강북 형들 넘 무섭게 생겼다. 다신 안간당…." 이 중딩과 점심을 거르는 강북의 고딩이 과연 같은 민족인가? 오늘 아침 농성장에 출근하는 노동자와 반성하지 않는 자본가가 굳이 같은 민족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은 무조건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민족적인 것이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파시즘을 부른다.


폭주족을 위한 변명

▒ 폭주족에 대한 사회의 적의는 지나치다. (폭주족은 오토바이를 사용한 범죄조직이 아니다. 폭주족이 경찰에 잡혀 봐야 구류 이틀밖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의 범법행위가 적어도 실정법 상으로는 매우 경미한 수준임을 방증한다.) 그 적의의 실체가 다름 아닌 계급적 경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밝고 깨끗하지 않은 모습을 한 모든 것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과 혐오이자 폭주족이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 대해 부끄러워 하면서 죽어지내길 바라는 사회적인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한 보복이다. 그 보복은 정기적으로 공공의 적을 선정하여 사회의 진짜 적을 감추는 TV라는 괴물에 의해 발표된다.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감히 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산층의 단잠을 깨워."


동물의 왕국

▒ 재벌의 힘, 그들이 경제난의 주범이라는 의견이 온 나라에 보편화된 오늘에도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건재할 수 있는 그 무한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국민들로부터, 고스톱을 치다가도 아홉 시 뉴스를 보다가도 재벌 얘기만 나오면 사악하다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이나 조카가 재벌의 머슴이 되는 일은 집안의 자랑으로 여기는 국민들로부터 온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재벌들에 보이는 적개심이란 실은 한 뼘이라도 재벌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의 비굴한 표현일 뿐일지도 모른다. 온 나라에 재벌에 대한 원성이 차고 넘쳐도 정작 재벌들은 한치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 원성이란 재벌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속에선 도무지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원성이 가상의 것이 아니라면 이른바 경제 개혁은 일주일이면 족할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권좌의 뒷켠으로 물러선 후, 대한민국은 단지 몇 개의 재벌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의 백성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인가.


개새끼들

▒ 군대 가서 사람된다느니 사내다워진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저 농담이다. 사람이 되는 게 권위에 무작정 복종하는 일이고 사내다워지는 게 힘없는 사람에게 일수록 불량스러워지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군대도 군대 나름이겠지만 이 나라의 평범한 아들들이 가는 군대란 언제나 고되고 삭막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며 아차 하면 병신 되거나 죽는 곳이며 도무지 배울 게 없는 곳이다. 돈을 먹여서 군대를 빠지는 일이 끔찍한 죄인 건 단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않거나 남 하는 고생을 피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대신 군대에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님 아들 빠진 자리를 머슴 아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시민사회에서 말이다. 군대란 안 갈수록 이익인 곳임에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한국의 신체 건강한 청년이라면 그저 눈 딱 감고 3년 썩어줄 필요가 있다. 어쩔 것인가. 후진 나라에 태어난 것도 죄라면 죄 아닌가.


어머니

▒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양 안타까와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지성

▒ 지성이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안온한 시절에는 사고의 축이다가 절박함 속에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인 것 같다. 그 지성 속엔 분명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절박함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 특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도 실제 필요한 양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지성을 갖고 있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종류의 지성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배운 사람들은 언제나 제 머리통 속에 수집해놓은 동서고금의 온갖 지성의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내비치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서 자신을 구별짓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지성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대개 우리의 안온함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며,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거북알

▒ 나는 표현의 자유가 무조건적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의 모양을 한 범죄의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여과장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여과장치의 역할을 공권력이 맡는 건 봉건사회나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과장치는 전체 일반인의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되는 민간의 것이어야 한다. 김종필은 "음란성은 작가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정서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 했는데 그가 말한 일반인이란 실은 (앞의 인용문을 남긴) 도덕주의자 일반이다.
 그런 도덕주의자들이 매우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건 그들 스스로 쉴새없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조리퐁은 여성 성기이고 가수 이정현이 꼽고 나온 비녀는 남성성기이며 테트리스 게임은 삽입성교이고 '거북알'이라는 과자는 콘돔이다. 그들의 '음란성'은 놀랍지 않은가. 그들의 눈에 온 세상은 성기와 닮은 것이다. 나는 그들이 총각김치나 조개구이를 먹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통일

▒ 우리는 남북 지배세력이 통일 정세(통일 지향적 정세)를 만드는 실제 이유를 따질 필요가 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분단으로 속아온 우리가 또다시 통일로 속지 않으려면 말이다. 상식 선에서만 말하자면, 남한 지배세력의 통일 정세는 이른바 남한식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 방책이고 북한 지배세력의 통일 정세는 이른바 북한식 사회주의 위기 탈출 방책이다. 통일 정세가 이른바 경제협력을 골간으로 진행된다는 것, 그 경제 협력을 위해 그토록 강고하던 남한의 반공주의와 북한의 반미주의가 싱거울 만치 쉽게 조정된다는 것에서 보여지듯 말이다.


프로

▒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프로라는 말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당연한 뜻보다 전문적이라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소수만이 대우받는 어떤 직업 영역에서 그 소수를 가리키는 말 따위로 말이다. 자본주의가 넘치기 시작한, 혹은 이미 넘치는 사회에서 프로는 전문적이라는 뜻을 넘어 어떤 강력한 찬미의 말로, 당대의 사회적 영웅에게 수여하는 작위의 말로 쓰여진다. 한국사회에서 프로라는 말이 그렇게 쓰인 첫 예는 90년대 초반 광고장이들(얕보려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렇게 즐겨 부르더라) 에게다. 기억하는가, 카피라이터니 AE니 하는 광고장이들이 진정한 프로의 이름으로 찬미되던 시절을
 ……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하던가.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모든 생산이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자본의 일방적인 이익보전을 위해 유지되는 그런 모순은 자연스레 과잉생산과 빈부의 격차를 낳는다. 광고는 그런 모순을 희석하고 포장하는 자본의 강력한 무기다. 광고의 목적은 생산과 사용 사이의 어떤 안내가 아니라 생산과 사용 사이의 모든 현혹이다. 그 현혹을 위해 당대의 문학예술적 성취 가운데 가장 감각적인 부분이 총동원된다. 잘 만들어진 광고는 예술작품인 듯 아름답지만 그 목적이 현혹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 아름다움만큼 추악하다.
 ……
 짐짓 10년이 흘러, 한국 자본주의의 열차가 구제금융이라는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의 마지막 터널마저 통과한 가장 최근 프로의 작위를 받은 건 그 이름도 노골적인 펀드매니저, 돈놀이 기술자들이다. 돈독 오른 사람들의 모사꾼 노릇이라는, 합법적인 직업 가운데 가장 천박한 직업이라 할, 빛나는 금테 안경에 와이셔츠 깃을 예리하게 세운 돈놀이 기술자들은 오늘 우리 앞에 거만하게 팔짱 낀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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