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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비극과 희극을 구별할 수 있는 것도 대상 속에서 발견된 것과 꼭 같은 종류의 차이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희극은 인간을 규범 이하로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비극은 규범 이상으로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시 예술의 기원은 두 가지의 본성적인 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방의 과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어렸을적으로부터의 본성적인 과정이다. 인간은 가장 모방적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며,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방에서 쾌락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그 증거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바다.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직접 보면 우리에게 큰 슬픔을 주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정확하게 재현된 것을 보면 우리는 즐거움을 느낀다.
…… 화음이나 리듬(운율도 분명히 리듬의 일부다)과 마찬가지로 모방은 생득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날 때부터 이 능력을 타고 나서 그것의 전부를 서서히 발전시켜, 최후에 가서는 초기에 즉흥적인 작품들로부터 시 예술을 창조해냈다.
▒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희극은 저속한 인간들의 모방이다. 저속한 인간의 특징은 여러 종류의 악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보다도 특별히 "우스꽝스럽다"는 것인데, 이것은 "추악"의 일종이다.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남에게 고통도 주지 않고 해도 입히지 않는 어떤 실수나 추악함을 뜻한다. 얼른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실례가 희극의 가면인데, 이것은 추악하고 왜곡되어 있지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다.
▒ 비극은 적절한(proper) 크기를 갖는 고귀하고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비극은, 연극의 여러부분에 따로따로 적용되는, 여러 종류의 언어적 장식에 의하여 예술적으로 고양된 언어를 사용한다. 비극은 서술적 형식이 아니라 극적인 형식으로 제시되며, 연민(pity)과 공포(fear)의 감정을 자아내는 사건들의 재현을 통하여, 그러한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는 사건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성취한다.
▒ 이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건의 배열이다. 왜냐하면 비극이란 인간 그 자체의 모방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 생활, 행복, 불행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둘 다 일종의 행동에 의하여 성립된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는 어떤 행동이지 어떤 특질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 성격에 따라 특질이 결정되고, 그 행동에 따라 행복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성격을 모방하기 위하여 행동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동 때문에 성격이 비극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목적은 개개의 사건과 플롯의 제시다. 그리고 이 목적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임은 물론이다. 더욱이 행동이 없다면 비극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성격은 없어도 비극이 가능하다.
▒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 해서 시인의 기능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이나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일어날지도 모르고, 일어날 수가 있는, 사건을 서술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와 시인은 물론 산문이나 운문으로 글을 쓴다는 것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오히려 역사가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데 반하여, 시인은 일어날 수도 있었을 사건에 관해서 쓴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다 더 보편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반하여 역사가는 개별적인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란 말로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은 개연성과 필연성에 따라서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는 그 행동이 모방되는 인물들에게 명칭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이 보편적인 것이 곧 시가 노리는 바다.
▒ 시 예술에 있어서 우리는 설득력이 없는 가능한 것보다는 설득력이 있는 불가능한 것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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