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공지영 (오픈하우스, 2008년)
상세보기

▒ 삶은 우리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아. 내가 아니라 말이야. 그러니 네 꿈조차도 규정 속에 집어넣고 못질해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네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꿈을 꾸는 것과 그것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차단하는 것과는 다른 거야. 네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는 것과 네가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거지. 꿈이 네 속에 있어야지 네가 그 꿈속으로 빠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 사람들은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건에 대한 표상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찍한 것이고 깨어진 꽃병 자체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꽃병을 동일시하여 꽃병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꽃병에 집착하는 것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돈은 꼭 필요하며 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상처를 입힌다.


▒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 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참 이상하지. 살면서 우리는 가끔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가 있어.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지혜'를 얻는 일이 되겠지. 그런데 이 세상은 말이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를 훨씬 더 많이 준다.


▒ 글은 말이야. 이게 그림이라도 좋고 음악이라도 좋고 무용이라도 좋고, 어떤 예술 장르이건 말이야. 그건 오는 거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구. 유명한 곡, 유명한 그림, 어느날 섬광처럼 내리친 영감에 의한 것이 많아. 과학자의 연구가 7년간에 걸쳐 완성되었다면 그것은 실험하고 기다리고 쌓아 올렸던 연구의 시간이니 당연히 훌륭한 것이지만 예술은 불행히고 그것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7년 동안 쓴 단편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여서 억지로 뜯어고쳤을 확률이 더 높은 거야.
 그런데 이 '오는' 영감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활자에 예민해 있어야 하고, 많은 글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관찰하고 통찰한 데이터들이 머릿속에 있어야 해. 그러고는 앉아서, 친구가 놀자고 메신저로 아무리 말을 걸어와도, 아무리 재미있는 축구 시합이 있어도 그런 것들을 물리친 채로 앉아 있을 마음의 용기와 엉덩이의 끈기가 필요한 거야.
……
 작가는 현실을 다루는 사람이다. 설사 공상이라 해도 현실의 요소들이 없다면 우리는 전혀 그것과 교감할 수 없어. 그래서 작가는 이 모든 현실을 알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읽으며 기다리는 거야. 소설이, 글이 내게로 올 때까지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은 묻곤 하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또 읽는데 소설이 혹은 글이 오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죠? 그러면 엄마는 대답한단다.
 "네, 그러면 쭉 돈을 벌고 읽으며 살면 됩니다. 그것도 행복한 삶이니까요."


▒ 누군가 의도적으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고 네가 진정, 그 사람이 삶이 아픈 것이 네가 아픈 것만큼 아프다고 느껴질 때, 꼭 나와 함께가 아니어도 좋으니, 그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랄 때, 그때는 사랑을 해야 해.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네 힘을 다해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해.
……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 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거지.


▒ 붙박여 있기만 한 삶도 떠돌기만 하는 삶도 실은 그 뿌리는 같다. 그것은 두려움과 무책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