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보르헤스전집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민음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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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폐허들

▒ 폐허가 된 <불의 신>의 신전이 불에 의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순간, 그는 강으로 뛰어들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곧 죽음이 자신의 노년을 영화롭게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힘든 삶의 노고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불길의 날개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불길은 그의 살갗 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불길은 그를 할퀴고, 그를 집어삼켰지만 그는 불의 열기를 느끼지도 못했고, 타지도 않았다. 안도감과 함께, 치욕감과 함께, 두려움과 함께 그는 자신 또한 자신의 아들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꿈꾸어진 하나의 환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 2막에서도 1막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다른 이름들을 가지고 나타난다. <극작가> 윌프레드 퀼리스는 리버풀 시에서 중개인이 되어 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존 윌리암 퀴글리이다. 트레일 양 또한 존재한다. 퀴글리는 단 한 차례도 그녀를 본 적이 없지만 병적으로《테틀러》지나 《스케치》지에 나온 그녀의 사진들을 수집한다. 퀴글리는 1막의 저자이다. 허구적 진실성이나 현실감이 결여된 그 <별장>은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모양이 바뀌고 크기가 커진 유태-아일랜드계 하숙집으로 변해 있다……. 2막의 플롯은 1막의 플롯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2막의 플롯은 약간 음산하고, 제대로 풀려가지 않고, 실패로 돌아간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그 해답이 장기인 어떤 수수께끼에 대해 물어볼 때 해서는 안 될 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시고 대답을 해보시죠」
「장기라는 말이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알버트가 말했다─.『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그것의 해답이 시간인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 또는 우화인 거지요. 바로 그러한 깊은 이유 때문에 그는 그 단어를 언급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어떤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가장 뛰어난 방법은 그것을 <영원히> 생략해 버리거나, 췌사적인 은유, 또는 뻔히 드러나는 우회적인 언어에 호소하는 방법일 겁니다. ……. 」



비밀의 기적

▒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죽음의 정황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이없게도 그는 그 정황의 모든 가능성을 추정해 보려고 했다. 그는 그 잠에서 깨어날 새벽부터 신비스러운 발사의 순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무한히 예상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율리우스 로스가 예정해 놓은 그날이 오기도 전에 수백 번도 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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