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스티븐 킹 (김영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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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다른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알아둬야 할 규칙이 하나 있다.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편집자의 충고를 모두 받아들이는 작가는 아무도 없다. 타락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편집자의 완벽한 솜씨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다.


▒ 지금까지 자주 경험한 일인데, 조금이라도 성공을 거둔 소설가에게는 잡지사도 '우리 잡지엔 안 맞는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 역시 좋은 글이란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동시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바위처럼 침착한 사람들도 미친 듯이 성교에 몰두할 수 있다면─적어도 성교 중에는 정말로 얼이 빠져버린다면─글쟁이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살짝 돌아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 어휘들은 연장통 안에서도 제일 위층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어휘력을 키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 《뉴요커》와의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했을 때 기자는 내 말을 못 믿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안 믿어도 좋다, 다만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만 믿어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소설은 선물용 티셔츠나 전자 오락기가 아니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발굴한 화석이 조가비처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엄청난 갈비뼈와 빙긋 웃는 이빨들을 모두 갖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아주 거대한 것일수도 있다. 단편 소설이든 천 페이지 분량의 대작이든 간에, 발굴 작업에 필요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 그렇듯한 어떤 상황만 있으면 플롯 따위는 의미를 잃고 만다. 그래도 나로서는 아쉬울게 없다. 가장 흥미진진한 상황들은 대개 '만약'으로 시작되는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만약' 흡혈귀들이 뉴잉글랜드의 어느 작은 마을을 습격한다면─<세일럼스 롯>
 '만약' 네바다의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어떤 경찰관이 이성을 잃고, 만나는 사람마다 죽여버리기 시작한다면? ─<데스퍼레이션>
……
 

▒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독자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면 등장 인물의 겉모습보다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좋은 소설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라는 것이다.


▒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망치로 엄지를 내리쳤을 때 사람들이 내뱉는 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점잖은 체면 때문에 '이런 제기랄!' 대신 '어머나 아파라!' 라고 쓴다면 그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짓이다. 여러분은 꾸며낸 이야기를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표현하겠다고 이미 독자들에게 약속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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