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로 만든 집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윤성희 (민음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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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 쳐다만 보아도 눈 안으로 하늘이 옮겨올 것 같은 맑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내 마음의 티끌 하나가, 그것이 정말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너무 파래서 저게 과연 하늘일까, 의문이 드는 오늘 같은 날 나는 나를 잊으려 한다.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그 비워진 공간만큼 나는 행복해지곤 했다. 텅 빈 마음속으로, 긴 세월을 살아 잔뜩 주름이 지고 만 연립이 무심히 끼여들었다.


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 나는 사람들에게서 한 발짝씩 떨어졌다. 이빨을 감추는 대신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혼자가 되면 윗니를 가릴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은 내게 무관심해졌지만, 그 전에 나는 그들을 내게서 소외시켰다.


모자

▒ 자동차 안을 둘러싸고 있는 롤바 때문인지, E는 운전석에 앉으면 새장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새장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두려움 따위는 금방 잊혀졌다. 두려움이 자신을 덮치려 할 때마다, E는 롤바가 설치된 자동차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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