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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 "나는 늘 시인들에게 각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 나와 유익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시인들도 많아. 시인들이란 오늘날에도 삶의 한가운데에는 그 어떤 영원한 힘과 아름다움이 은밀하게 들어 있다는 믿음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일세. 그러한 힘과 아름다움에 대한 예감은 이따금 한밤붕에 번개가 치듯 수수께끼 같은 현재 속에서 빛난다는 거야. 그들은 일상적인 삶과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커튼 위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거지. 이 커튼 뒤에서야 비로소 원래의 삶, 진정한 삶이 연출된다는 거야. 또한 내게는 위대한 시인의 아주 고귀하고 영원한 말이 몽상가의 웅얼거림으로 보이네. 자신도 모르게 저편 세계의 높은 곳을 힐끗 쳐다보고 무거운 입술로 중얼대는 그런 몽상가 말일세."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
▒ 지상에서 크게 달성한 진보는 평등함 이었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내가 들은 대로 모든 나라들이 아주 평등했다. 전쟁 국가와 중립 국가 사이의 차이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15,000에서 20,00미터 상공에 떠 있는 기구로부터 일반 시민을 향해 기계적으로 총격을 가한 이래로, 예나 지금이나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 간 경계선이 무의미해졌다. 공중에서 포탄을 마구 떨어뜨리는 범위가 넓다 보니, 그런 기구를 타고 사격하는 자는 자신의 영역을 맞히지만 않아도 만족이었다. 폭탄 중 많은 양이 중립국이나 심지어 연합국의 영역에 투하되어도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전쟁 자체가 만들어낸 유일한 진보였다.
성탄절과 두 어린이의 이야기
▒ 슬프다. 인생이 그토록 짧은데도, 중요하고 불가피해 보이는 현실적인 의무와 과제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우리는 아침에 침대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 커다란 책상 위에 끝내지 못한 일들이 넘쳐 있고 종일 우편물 더미가 두 번이나 쌓일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어린이의 원ㄱ를 가지고 아직도 재미있고 사려 깊은 놀이를 많이 할 수 있으련만. 나에겐 예컨데 두 습작의 스타일과 문장론을 비교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놀이를 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충분히 길지가 않다. 또한 두 작가 중 육십삼 년이나 어린 사람을 분석과 비판, 칭찬과 질책을 통해 그의 발전에 영향을 주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물론 그 애는 이 늙은이와는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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