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개정판)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빈센트 반 고흐 (예담출판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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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 최근에 다른 화가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것에는 꿈쩍도 안 했다.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은 자연의 말이지 화가의 말이 아니거든. 요즘에서야 모베가 6개월 전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말했다. "나에게 뒤프레에 대해서 말하지 말게. 차라리 도랑의 둑에 대해 말 하는게 낫지.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네. 사물 자체에 대한 느낌, 현실에 대한 느낌은 그림에 대한 느낌보다 훨씬 더 중요하네. 그것이 더 생산적이고 더 많은 영감을 주거든."


▒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 어디선가 리슈팽이 그랬지.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잃게 만든다"고. 그건 정말 옳은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 역시 예술에 대해 넌더리를 내게 만든다.


▒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예술을 창작하는 데 드는 것보다 적은 경비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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