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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군주가 곧 지도자였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간단한 과정을 통해 역사의 경로를 결정했다. 오늘날 지위나 능력을 통해 군주의 권력을 이어 받은 사람들은 대중의 동의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그들은 합의를 도출하는 데 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선전에서 방법을 찾는다. 선전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일상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양복을 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자신이 선호하는 옷을 고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런던의 어느 이름 없는 멋쟁이 재단사의 명력에 따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 트로터와 르봉은 집단 심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사고 대신 충동, 습관, 감정이 자리한다. 결정을 내릴 때 집단 심리는 대개 믿음이 가는 지도자의 선례에 따르려는 충동을 보인다. 이는 가장 확고하게 구축된 대중심리학의 원리 가운데 하나다. 여름 휴양지의 명성이 갑자기 치솟거나 추락하는 데에는, 은행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속출하는 데에는, 주식 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데에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데에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데에는 이러한 원리가 작용한다.
▒ 프로이트학파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 상당수는 그 동안 억눌러왔던 욕망을 보상하는 성격을 띈다고 주장해왔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희구한다면 그 이유는 그 대상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나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언가 다른 것, 즉 스스로 인정하기에는 수치스러운 욕망의 상징을 무의식중에 보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이동 수단이 필요해서 구입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자동차라는 짐을 떠안느니 건강을 위해 걸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가 자동차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차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상징이거나, 성공의 징표이거나,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오늘날 성공한 기업인은 정치인을 흉내낸다. 그는 선거 운동의 번지르르한 과대선전을 채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곁들이 쇼도 종류대로 선보인다. 해마다 그는 연설, 깃발, 허풍, 위엄, 가족주의의 색채를 약간 띄는 사이비 민족주의로 대변되는 만찬회를 개최한다. 경우에 따라선 그 옛날 공화국 시절에 명예로운 시민에게 포상을 했듯이 직원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대기업의 곁들이 쇼에 불과하다. 이런 요란한 북 장단을 통해 대기업은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인상을 조성한다. 이는 대기업이 이사진과 직원들, 주주와 소비자 대중의 열렬한 충성심을 끌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는 대기업이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법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실제 업무인 판촉 활동은 대중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그러한 분석에 근거한 제품 생산,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의 총동원으로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선거 운동에도 곁들이 쇼, 표창장, 호언장담, 미사여구 일색의 번드르르한 연설이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중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대중이 원하는 정당, 후보자, 연설, 행동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본연의 업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정치는 미국 최초의 대기업이었다. 따라서 기업은 정치에서 모든 것을 배운 데 비해 정작 정치는 기업으로부터 생각과 제품의 대량 보급 방법을 별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소수가 지배하지만 자신의 근거지에 있는 대중을 만나러 나와야만, 다시 말해 대중의 심리를 분석해 이를 활용해야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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