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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감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병보석이었다. 그리고 약방의 감초처럼 덧붙여진 한마디는,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 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고무도장에 새겨서 필요할 때면 마구 찍어 내거나, 녹음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 반복 또 반복해 가며 틀어 대는 것처럼 벌써 4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그 생명력을 과시해 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그 반복 행위를 지겨워하지도 않고, 신물 내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 주고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큰 기업이 잘돼야 우리도 잘살게 되지. 대중들은 이렇게 동의하고 동조하면서 재벌들이 저지르는 죄를 가볍게 여겼고, 그들이 받는 사법적 특혜에도 지극히 관대했다. 국민경제를 위하여…….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의 주문은 그 효력 좋고 생명력 강대하기고, 우리를 믿어야만 재물운이 트이고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그 한마디로 2천 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배부른 번성을 누려온 종교들의 질긴 생명력과 맞먹었다. 신문들이 앞장서 설파하고, 법관들까지 활용하고 나서는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은 자본주의 한국에서 출현한 신통력 좋은 신흥 종교이기도 했다.
▒ "하긴 그래. 자본주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저 까마득한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사기》에서 말했었지.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 그러니 자본주의에서야 더 말해 뭘 해."
▒ 기억이 광고라는 초대형 대포로 각종 언론을 손쉽게 다루는 것은 참으로 고소하고도 달콤한 부수입이고 덤이 아닐 수 없었다. 상품 판촉 실컷 하고, 기업 경영의 보호 무기도 되고, 더없이 매력적인 광고비의 이중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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