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양이하고 인사하실래요?

저자
조 쿠더트 지음
출판사
프리미엄북스 | 2002-03-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일곱 마리 고양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란 제목으로 ...
가격비교

 

비티

 

▒ 그날 이후 가끔씩 모임에서 외톨이라는 느낌이 들 때면 난 그대의 비티 모습을 떠올리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수줍음과 자의식에 사로잡혀 구석에 틀어박혀 앉아서 누군가 먼저 날 알아보고 말을 걸어 주고 환영해 주길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남이 나를 받아들여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기분 좋게 나아가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비티로부터 배웠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남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무안당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기껏해야 비티가 겪었던 정도일 뿐이다. 자, 트롯은 비티에게 한 방 먹였고 피클스는 차가운 시선으로 비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내게 냉랭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차갑게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면 비티처럼 다가가는 발걸음을 잠깐 멈칫하겠지만, 얼마 후 더 너그러운 사람이 웃어 주고 말을 걸어 주고 내게 자리를 내주면 그 정도 상처야 씻은 듯 사라지고 만다.

 

▒ 예전에 어떤 정신과 의사가 선천성 조증 환자가 부럽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선천성 조증 환자란 매사에 그저 낙천적이고 마냥 명랑하기만 한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이다. 그때 난 너무 젊어서 의사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비관주의는 심오함이요, 발랄함이란 곧 경박함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음울한 성격은 진지하고 세련된 본성을 뜻하는 것이고, 밝고 쾌활한 성격은 삶의 본질을 통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언제쯤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비관주의가 삶의 빛을 바래게 하고 흥미를 시들게 하고 활기를 앗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하면 생활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버린다. 거리를 두지 않아 시야가 좁아지면 우리 눈에는 자신의 문제만이 보인다. 그러면 문제가 더욱더 커다랗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뿌리를 박고 자연스러운 성쇠의 리듬을 가진 훨씬 더 큰 세계 속의 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우리 자신이 앞으로 무한히 뻗어 있고 뒤로 끝없이 이어진 생명의 사슬 중 한 연결 고리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주 소중하면서도, 어저면 그토록 중요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중적인 진실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 사랑한다는 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덧없는 것을 두려움 없이 감싸앉는 것이다.

 

 

파피

 

▒ 누군가, 대개는 여성이지만, 실패와 불행, 혹은 중독증으로 허덕이는 사람을 보고 그를 구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한다면, 나와 비슷한 덪에 걸려들기 쉽다. 그녀는 아마 상대의 문제를 훤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파피의 문제를 고스란히 알고 있었듯이. 그녀가 모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 파피를 보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실감했다.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을 주려고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해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자포자기적 행동을 고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노력을 쏟아붓는다 해도, 그리고 내 태도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도 상대방을 밑바닥에서부터 변화시킬 수는 없다. 파피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해주었다. 문제는 내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관이었다. 무언가 바꿔야 한다면, 그 세계관부터 뜯어고쳐야 했다.

 

▒ 보스턴과 파피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둘 다 옳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이 그런 곳이어서가 아니다. 그들 자신이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두 고양이의 대조적인 믿음이 각자의 운을 부른 것이다. 보스턴은 사랑을 주기 때문에 사랑받았다. 파피는 삶이 끔찍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끔찍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 ... 편견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있을때는 단단하고 커다랗게 느껴져도 바깥으로 꺼내 현실의 빛에 비추어 보면 힘없이 스러져 버린다.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말이다.

 

▒ 파피보다 더 불행한 새끼 시절을 보낸 고양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윗마을에 사는 꼬마들이 파피를 때리고 던지고 한밤중에 가두어 놓았다고 해서, 그게 파피가 자기를 비하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때쯤의 아이들은 다들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체스터

 

▒ 예의 범절은 그만큼 사람들이 마음을 놓게 하는 효과가 있다. 도로 중간에 그어진 하얀 차선처럼, 예절은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고, 충돌을 막아 주며, 인간 관계를 원활하게 한다. 고양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나는 개성이니 자유니 하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에의 범절을 내팽개치는 요즈음의 풍좆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손한 행동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자기 일에만 관심들을 갖는 것 같다. 이상한 일은, 그렇다고 사람들이 더 너그럽고 자유스러워 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하얀 차선처럼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없어지면 우리의 자신의 신체와 재산과 영토를 스스로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 불쾌하고 어지러워지고, 그런 세상에서 안전을 지키려면 예전 같으면 훨씬 더 생산적으로 사용햇을 에너지까지 끌어와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 카인과 아벨 시대부터일은 인간의 받은 저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퇴를 통해 일에서 도피하려는 계획들을 세운다. 복권을 사거나 사기를 쳐서라도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다 남은 세월 어떻게 일 안 하고 놀고 먹어 보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지구상에는 노동이 힘겹고 끔찍한 족쇄와 같은 나라도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도 한때 공장과 작업장마다 너무 긴 근무 시간과 비인간적인 환경과 무자비한 착취가 큰 문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노조가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합리적인 근무 시간과 노동 강도를 규제하는 법들을 쟁취해낸 것이다.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결과가 느닷없이 끼여들었다. 노동자의 착취에 대항해서 싸우는 과정에서, 일 자체를 착취로 보는 견해가 생겨났다. 일은 적게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버린 것이다.

 

▒ 앤 모로우 린드버그 <바다의 선물>에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잊고, 친지를 잊고, 어디에 잇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두 잊어버릴 정도가 될 때 마치 참에 취한 듯이, 또는 바닷물에 흠뻑 젖듯이, 그렇게 일에 푸욱 빠져 버렸을 때 바로 그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란!" 이라고.

 

 

삭시

 

▒ 삭시의 인생은 출발이 불행했다. 파피의 인생도 출발이 불행했다. 둘의 차이는 삭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피처럼 상황에 짓눌려 일그러져 버린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운명을 예의주시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비결이다.

 

▒ 돈은, 수중에 있든 앞으로 들어올 것이든 간에 충격 완화 작용을 한다. 행동을 느리게 하고, 나아가 사람을 미련하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 기회가 와도 재빨리 붙잡을 필요가 없으니, 시간을 때무며 다른건 뭐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도 없으니 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다. 돈이 있으면 우회할 수 있고, 일탈을 할 수도 있다. 직업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고 좀더 좋아 보이는 일을 하거나, 한동안 또는 아예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기회가 많다는 것은 기회가 없다는 것과도 같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안 하게 될 것이다. 문이 전부 열려 있다면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평생 빈둥거리며 아무 일도 못 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별다른 성취감도 없을 것이고,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 ...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삭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삭시는 불행한 유년기를 극복해 냈지만, 유년기의 결핍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평생 그 허전한 공간을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삭시는 사랑과 풍요를 갈구했고 또 성취했다. 하지만 삭시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 아무리 애정을 주어도 삭시에겐 충분하지 못했다. 삭시의 사전에는 절제와 중용이란 낱말은 없었다. 비티가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서 사랑했던 반면에, 삭시는 필요에 의해 사랑을 했다. 비티는 확인과 호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지만, 삭시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구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비티는 자기 자신을 표현했지만, 삭시는 자아의 결핍된 부분을 메우고자 했다.

 

트롯

 

▒ 흔히 옷을 입는 것, 또는 겉모습 전반은 곧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들을 한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자긍심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에전에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커뮤니케이션이 양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와 나 자신의 내면으로 말이다. 겉모습을 깔끔하게 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내면적으로 정돈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넌 정말 유능하고, 매력적이고, 자신있어 보여. 그러니까 넌 바로 그런 사람인 거여' 라고. 초라하지 않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가지면, 더 똑바로 서고 더 권위 있게 행동할 수 있다. 심지어 고상해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 지지부진하지 않고 유능하다는 느낌을 가지면 주변에 질서와 아름다움을 전파할 수 있다. 또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닥쳐 오는 일에 압도되어 처지는 일 따위는 피할 수 있다.

 

스위트 윌리엄

 

▒ 음악은 <자율 훈련법> 정본에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그 방법을 아주 좋아했다. 음악이 나 자신을 잊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내 마음속을 제멋대로 흐르는 생각의 흐름을 차단시켜 주었다.

 

▒ 다른 마음한테는 잘 속지 않는 마음일수록 자기 자신한테는 쉽게, 또 꾸준히 속는 경향이 있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생각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람을 보려면, 우리는 내면의 독백을 멈추고, 돌아가는 테이프를 정지시키고, 폐쇄 회로 TV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명상은 바로 이런 일을 해준다. 자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소리들을 잠재우고 자아의 정체와 본질을 약간이나마 더 깨닫개ㅔ 해서, 스위트 윌리엄의 평온한 성격과 같이 푸근한 마음이 되게 해준다.

 

케이트

 

▒ 남자와 함께 있을 때 여자는 자신을 죽이고 남을 돋보이게 하며 상대방을 존경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화된 나는, 더 나이 들고 현명해진 뒤에야 그런 숭배는 금세 식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등하게 맞서 오는 또 다른 정신, 또 다른 성격, 또 다른 독립적인 존재만이 꾸준한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가치 있는 파트너는 가치 있는 적수이기도 해야 한다. 자기 몫을 해 내는 남자는 자신과 대등한 사람이 도전해 오는 것을 좋아한다.

 

▒ 최소한 겉보기에,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가 투사하는 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 이미지가 연약하고 불운하며 남에게 쉽게 지배당하는 사람인지, 늘 화를 내며 방어적인 사람인지, 강하고 확신에 넘치는 사람인지 말이다. 그런데 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는단 말인가.

 

▒ 우리 모두는 강한 성격에 제압당할 위험은 항상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약점에 의해 지배당알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명령이나 강요를 받는 건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근심이나 동정이나 관용에 의해 타인을 조종하는 것은 훨씬 미묘하다. 우리는 온 힘을 들여 상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 주려 하고, 상대를 꿰뚫어보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분노나 신경질이 나려 할 때 억지로 참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는 꼴이 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일 권리를 몰수당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 그 후 나는 원래부터 삶에 깃든 의미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자기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삶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인생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살ㄹ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삶의 기술은 위대한 삶에서, 사려 깊은 사람에게서, 책에서, 대화에서, 자연에서, 이야기에서, 심지어 고양이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주변에 깔려 있는 진실들을 주워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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