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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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몰라. 쓰쿠루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 여기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매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여기에서 현실이라 부르는 것들이 현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 이 세계에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 "요리사는 웨이터를 증오하고, 그 둘은 손님을 증오한다. 아널드 웨스커(Arnold Wesker)의 '부엌'이라는 희곡에 나오는 말이에요.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삶은 살기 싫어요."

 

 

▒ 미도리카와는 지금 도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없느냐고 했다. 그런대로 볼만한 구경거리가 아닌가. 여기저기서 매일처럼 소동이 벌어진다. 꼭 세계가 뿌리째 뽑혀 뒤집히는 것처럼. 그런 현장을 못 본다는 게 아쉽지 않은가. 그는 그렇게 물었다.

 세상은 그리 간단히 뒤집히지 않는다고 하이다는 대답했다. "뒤집히는 건 인간입니다. 그런 걸 못 본다고 해서 아쉽지도 않습니다."

 

 

▒ 아카는 말했다. "잘 알겠지만, 나고야는 일본에서도 몇 안되는 대도시이지만 동시에 좁은 곳이기도 해. 사람은 많고 산업은 융성하고 물자는 풍부하지만 선택지는 의외로 적어. 우리 같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게 여기서는 간단한 일이 아니야. ……어이, 이런거 엄청한 패러독스라는 생각 안 들어?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내가 신입 사원 연수 세미나에서 처음에 늘 내뱉는 말이야. 나는 먼저 세미나실 안을 휘익 둘러보고 적당히 한 수강생을 지목해서 일어서게 해.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자, 여기 자네한테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있어. 먼저 나쁜 뉴스. 지금 자네의 손톱 또는 발톱을 펜치로 뽑으려 한다. 안됐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다. 절대 뒤집을 수 없다.' 그런 다음 나는 가방에서 아주 무섭게 생긴 커다란 펜치를 꺼내 보여 줘.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그놈을 보여 주지. 그리고 말해. '다음은 좋은 뉴스. 좋은 뉴스란, 손톱을 뽑을 건지 발톱을 뽑을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거야. 자, 어느 쪽으로 할 텐가. 10초 내에 결정 해야 해. 만일 스스로 어느 한쪽을 정하지 않으면 손과 발 두 쪽을 다 뽑아 버릴 거야.' 나는 펜치를 손에 든 채 10초를 카운터해. '발로 하겠습니다' 거의 8초가 지나서 그 친구가 말해. '좋아, 그럼 발로 정해졌어. 지금부터 이놈으로 자네 발톱을 뽑도록 하지. 그 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 왜 손톱이 아니라 발톱을 선택했지?' 내가 물어봐. 상태는 이렇게 대답해.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아픈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발톱으로 한 겁니다.' 난 그 친구와 따스한 악수를 나누고 이렇게 말해. '진짜 인생에 온 걸 환영해.'라고. 웰컴 투 리얼 라이프.(Welcome to real life.)"

 

 

▒ 그렇게 압도적인 사람의 물결이 일주일에 5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역무원들에 의해 아주 매끄럽게 별 탈 없이 흘러간다니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이다.

... 천운이 따르는 사람만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하고, 사고로 유혈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게 신통하다고 쓰쿠르는 언제나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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