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요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마렉 플라스코 (세시,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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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 일요일까지야. 일요일까지만 기다리면 돼. 그때는 어떤 식으로든 판가름이 날 테니까. 우리는 일 주일 동안 잘 생각해 보자는 약속을 했어. 이제 이삼 일만 더 참으면 돼. 그런데 일요일 밤까지도 그녀가 오지 않으면, 그때는 만사가 모두 끝나버리고 말아. 정말 그때는……."
 "정말 그렇게 될 때는……."
 아그네시카가 불안스럽게 물었다. 구제고지는 힘없이 고개를 들고 아그네시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때는……."
 "그땐?"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내가 인생에서 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별 도리 있겠니?"
 구제고지는 씁슬하게 웃었다.
 "오빠는 진 것이 아니에요. 오빠의 일생은 아직도 창창해요. 오빠는 젊은 청춘이에요."
 아그네시카의 말에 구제고지는 양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젊은 청춘? 그게 도대체 무슨 보람이 있는데?"
 그는 청춘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멸시하듯 비아냥거렸다.
 "아그네시카야, 도대체 오늘날 이 사회에 스물다섯 살의 청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설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그 알량한 청춘이 과연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냐? 너까지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우리 앞길에는 꿈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 따위의 감언이설을 믿는 젊은이가 과연 이 시대, 이 세상에 있을까? 모든 인간의 감정은 신성한 법이야. 단 한 번의 인생인데 두 번씩이나 바보처럼 첫번째 여자에게처럼 새로운 여자에게 전심전력을 기울일 그런 순정파가 과연 있을까? 모든 것을 준다고? 흥, 그것은 결국 우리가 쉬쉬하며 감추는 세척기나 콘돔이나 중절법 따위가 아니고 뭐겠니?"


▒ "우리들은 매일 귓속말로 소근소근대며 속삭였었지. 서로 숨김없이 남이 들어주건 말건 계속 속을 털어 놓았지. 그 얘기가 사실이건 망상이건 상관없이 말이야. 어떤 때에는 상대방에게 진정 애원하다시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진정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자신들조차 몰랐어. 왜냐하면 그런 남의 잔소리를 침착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모두가 자기 자신의 세계를 상상하느라 바빴으니까 말이야. 즉, 우리는 모두가 사실이 아닌 자신만의 문제를 망상하며 지냈다고 할까."


▒ "피곤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폴란드에서 전 국민에서 공통된 것이 두 가지 있어. 그것은 바로 술과 피곤이야."


▒ 벽, 네 면의 벽, 아니 세 면이라도 좋아. 세 면이라도 방이될 수 있을까? 그런 방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그럼, 그런 방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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