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박노자 (한겨레출판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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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한국사회의 초상


▒ 구타가 완전히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군대에 대한 지배층의 실제적 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도 나라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한국의 보수정객과 재벌들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평상시에는 '상전'을 위해서라면 비자금 조성이든 세금 탈루든 필요없는 자동차 공장 계획 추진이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충복'이고, 유사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동족을 쏘아 죽일 수 있는 '강인한 애국자'다. 출세를 위한 맹종을 유일한 신념으로 삼는 '인간 로봇'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군대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사회의 '주문'인 셈이다. 그리하여 인간 존엄성의 개념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반발심 등 '불필요한 심적 현상'을 졸병의 마음에서 깨끗이 일소해 버리는 것이 군대의 주요 의무가 되는데, 이러한 '교육적 과제'를 물리적인 폭력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힘들다.

▒ 노자 시대의 악인들이 적군을 죽이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면, 우리 시대의 존경스러운 지도자들은 '적군의 박멸'을 '첨단무기의 당연한 승리'로 자부한다. 인간은 과연 진보하는가?

▒ 최근 한국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대재벌들은 갖은 방법으로 젊은층의 소비심리를 자극하여 온 나라가 소비주의라는 고질병으로 멍들게 만들었다. 단순히 '과소비'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이상이 되고 만 것이 문제다. 신앙도, 문화도, 사람도 이 '벌이와 씀씀이'라는 단순한 등식 앞에서 무력하게 부서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인간이란 '벌고 쓰는' 기계적 존재로 취급받게 된다. '못 벌고 못 쓰는' 사람이면 '고장난 기계' 취급을 받고 사회에서 '폐기'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 진보적 지향을 하나의 지적인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년들에게 '규율'과 '복속'을 가르치는 사회장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보수적인 사회에 '진보적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다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왕년의 학생 지도자들이 한나라당 공천을 따내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할까. 그리고 나아가서 '진보적인 소장파'로 통하던 젊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인의 본래 소신과 무관하게 '보스'의 지시대로 국회에서 투표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위계질서와 타협한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 가끔 국내외 사회학자들이 한국 사회를 가리켜 '소용돌이형 사회(vortex society)'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소용돌이 모양처럼 일체 구성원이 사회의 중심을 향해서 발버둥치며 진출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신분 상승의 욕망이야 없는 사회가 없겠지만, 그 욕망을 억제하는 법률적 · 도덕적 장치가 부재한 것이 바로 '소용돌이형 사회'의 특징이라는 논리다. '커닝'의 폐풍은 기계적인 근대성을 강제로 이식한 세계 주변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용돌이형 사회'의 특색이다.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 '민족주의'라는 것은 '원래부터 있어온' 것도 아니고, '밑에서부터 우러나온' 것도 아니다. '위에서부터'(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지식인 그룹이나 분단 정권 성립 이후의 남 · 북한 정권) 교육제도와 매체를 통해서 주입 · 강요해 온 것이다.

▒ 민족주의는 19세기 말에 나타난, '적자생존'을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종의 사이비 종교다. 그리고 그 종교의 신은 '우리'의 힘과 그 힘을 토대로 한 '우리'의 승리다. '우리'가 패해도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만큼 '우리' 구성원의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힘을 발휘할 때, '반대편'의 눈물과 피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와 '우리'의 성공이 절대자요 신에 해당한다면 '반대편'의 존재 공간이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이다.

▒ 하나의 동질적인 '민족언어'를 지닌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하고 국지적인 언어문화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언어적 민족주의의 이면이다.

▒ 미국 · 유럽 · 러시아처럼 제3세계 출신 노동자에게 인종주의적 · 민족주의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서 '국가경제의 필요성'으로 합리화되는 가혹한 '국가주의적' 착취를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현실은, 한국 지배층의 주요 원리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 그러나 아픈 사실이긴 하지만, 인종주의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인 한국은 그와 동시에 인종주의적 패러다임을 철저하게 내면화했다. 물론 한국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속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나머지 두 주요 국가, 즉 일본과 중국은 한국보다 먼저, 한국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인종주의를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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