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문열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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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반역의 죄목으로 체제의 상층부에서도 도태된 가문의 자손이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보다 적극적인 반역의 의지를 길러 가는 후손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체된 농경 사회의 역사에서 윗대의 반역 의지를 적극적으로 이어받아 다시 반역으로 나아가는 후손의 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더 흔한 예는 보다 철저하게 체제 이데올로기에 순종해 생존을 확보하고, 나아가서는 추방당한 옛 신분으로의 재편입을 꿈꾸는 쪽이었다. 이미 말했듯, 그가 바로 그랬다.


▒ "시를 얻음이 곧 세상 무엇보다 큰 얻음일 수 있지."
    "그 큰 얻음은 어던 것입니까?"
    "스스로를 자유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남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하게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함입니까?"
    "마음과 몸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마음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난다 함은……."
    "만상이 품은 바 그 원래의 뜻을 바라봄이다. 세상은 온갖 뜻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스스로 꾸미고 지어낸 온갖 거짓과 헛것에 얽매여 그 아름다움도 착함도 참됨도 거룩함도 보지 못한다. 오직 자유해진 마음만이 그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봄(見)은 또한 지음(作)이기도 하다. 원래 거기 있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함은 없음(無)과도 같으니, 그 없음은 그런 봄을 얻어서야 비로소 온전한 있음(存在)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원래 시(詩)하는 것은 그러한 봄이지만, 본다 하지 않고 짓는다 하는 뜻은 실로 거기에 있다."


▒ 모든 일탈자가 다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모두가 일탈자다. 또 어떤 시인은 전혀 일탈자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삶의 질서에 충실하고 그 기쁨을 웃고 그 슬픔을 운다. 그러나 그 시인도 결국은 일탈자다. 적어도 그 사람이 시인이라면 언어에서만이라도 반드시 일탈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실용의 질척한 대지를 벗어나서야 고귀한 시(詩)의 천상으로 날아오른다.


▒ "그대는 이제 떠나도 좋다. 애초에 그대가 약속한 생산은 반드시 지켜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목숨을 부지하고 떠날 수 있는 생산은 틀림없이 했다. 그게 무언지 아는가?"
 "……."
 "혁명을 꿈꾸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무릇 혁명하려는 자는 실질 없는 혁명의 노래가 거리에서 너무 크게 불려지는 걸 경계하여라. 온 숲이 다 일어나야 날이 새는 것이지, 일찍 깬 새 몇 마리가 지저귄다 해서 날이 새는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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