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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괜찮아, 고마워.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사가 대꾸한 말은 우리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 우리는, 괜찮아, 하고 말한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것은 일반적으로 용기 있는 태도로 여겨지며, 오직 인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 먼 옛날에 보통 사람들은 대담한 낙관주의에 기초하여, 그 해설자가 말한 것과 비슷한 주장과 비유를,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삶과 운의 성쇠로부터 지혜를 배운 사람들이 간직해 온 탁월한 격언이었다. 이것이 눈먼 자들의 땅으로 옮겨지면 이렇게 번역될 수 있겠다, 어제는 우리도 볼 수 있었으나, 오늘은 볼 수 없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약간 물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 막 말을 뱉으려는 순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신중한 태도 때문에, 희망 섞인 결론에 약간의 의심을 덧붙이는 것처럼.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더 참된 말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 아가씨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걸,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가 말했다. 말이란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의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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