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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찾아서
▒ 서구의 문화는 오늘날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서구는 시대적으로 앞선 곳으로, 서구의 바깥은 시간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것과 '그저 다른 것'까지도 간단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버리곤 했다. 이 제국주의적 편향에 대한 반발은 그 반대편에서 '뒤떨어진 것'까지도 서구의 것과 '그저 다른 것', 혹은 그보다 '더 나은 것'으로 강변하는 국수주의적 편향을 낳게 마련이다.
회사인
▒ 자발적이면서도 강제적인 신체 만들기. 이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현상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뜯어고친다. 언뜻 자발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 '존재미학'은 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요한 '생존미학'일 뿐이다.
▒ 국가 주도의 경제가 민간 주도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에는 국가를 대신하여 시장이 인간의 신체를 개조하는 역할을 넘겨받았다. 요즘 신문 지면에서 '맞춤형 인재'라는 말을 종종 본다. 이 말은 주로 대학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는 인간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제 인간도 양복처럼 맞춰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산학협동만이 아니다. 기업의 요구대로 맞추어진 인재는 지식이나 관심사뿐 아니라 세계관 자체도 기업의 코드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속도전
▒ 빨리빨리 문화는 노동생산성이 노동력의 양적 투입에 의존하던 시절의 잔재다. 그것이 남아 있는 것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이 시점에도 아직 산업의 상당 부분이 노동량의 단순 투입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그 속도가 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 일상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몸을 뜯어고치는 국가와 시장의 생체공학이고 그 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관철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존재미학
▒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예술의 재료가 신체일 때는 상당히 착잡해진다. 신체를 재료로 한 북한의 매스게임은 보는 이에게 근사한 작품일지 모르나, 정작 그 스펙터클 안에 들어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고통이다. 남한의 신체 에술은 어떨까? 시선은 권력이다.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은 처지가 다르다. 작품이 된 신체는 '보는 남자'에게는 미적 쾌감을 줄지 모르나, '전시된 신체'에게는 커다란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
데카르트와 황우석
▒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종교와 과학의 차이이자, 중세와 근대의 차이다.
취미
▒ 한국은 강렬하다. 전통문화의 급속한 파괴로 한국인의 신체는 취미의 섬세함을 갖출 여유가 없었다. 군대식 근대화로 이룬 한국의 자본주의는 유난히 공격적이고 극성스러워 오감을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고도로 발달한 미디어 문화는 자극적인 소리와 영상으로 신체의 촉각성을 강화하게 마련이다. 한국 문화의 강렬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자극에 노출된 신체는 감흥을 받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요하는 법. 강렬한 자극은 취미를 파괴한다.
카리스마
▒ 왕이 '자연의 운행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것은 고대인들만이 아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들은 것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이 '박정희 덕에 먹고산다'는 어법. 미국에도,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일본에도 이런 어법은 없다. 자신이 먹고사는 것을 정치 지도자의 덕으로 돌리는 봉건적 어법이 존재하는 곳은 남한과 북한뿐이다. 남한은 박정희 덕, 북한은 김일성 덕. 남들 다 제 덕에 먹고살 때, 남북의 인민들은 여전히 왕의 은덕으로 살아간다.
죄의식과 수치심
▒ 일본의 역사 왜곡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일이 드러나는 데에서 '수치심'을 느낄 뿐이다. 과거에 수치심을 느끼는 자들은 치부를 덮어 미화하려 하고, 과거에 죄책감을 느끼는 자들은 치부를 드러내서 반성하려 한다. 일본의 과거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일본의 과거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의 목소리를 '자학사관'이라 부르곤 한다.
▒ 우리가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늘 들었던 말이 바로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소리. 학교에서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삶의 목표마저 남의 눈에 맞춰지고, 사람들은 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하든 올바로 사는 것, 혹은 누가 뭐라 하든 내 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른바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혹은 '여봐란 듯이' 사는 것이 된다.
공포와 습관
▒ 원초적 폭력의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수'에 속해야 한다. 무슨 일에서든 유난히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은 실은 고립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다. 다수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소수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사회에서 혁신과 창안을 위한 용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낡은 습관에 따라 행해진다. 이렇게 공포는 습관을 낳고, 이 두 가지가 짝을 이루어 한국인의 보수성을 구성한다.
짝퉁
▒ 명품의 가치는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를 과시하는 데에 있다. 때문에 그것은 대중을 배제하는 전략을 취한다. 명품이 경제학의 상식을 깨고 비쌀수록 잘 팔리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상류층이 대중을 배제할수록 대중은 더 명품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대중의 제한된 경제력으로 마냥 엘리트층의 소비를 따라갈 수는 없다. 엘리트는 비싼 명품으로 계층의 선을 뚜렷하게 긋고, 대중은 값싼 짝퉁으로 그 선을 지우려 한다. 짝퉁은 상류층에 속하고 싶은 대중적 욕망의 허구적 실현이다.
▒ 넘어야 할 문턱에서 꿈만 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 하지만 문턱을 넘는 꿈을 꾼다는 것은 그래도 그 문턱 언저리에 바싹 다가와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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