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함민복 (문학세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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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圓을 태우며


불타는 나무토막이
불꽃으로
푸르던 시절 제 모습을 그려 본다
불꽃으로
뿌리내렸던 산세를 떠올려 본다

살며 쪼였던 태양빛을 토하며
조밀한 음반
기억의 춤 나이테를 푼다

새의 날갯짓 활활
눈비바람 꺼내 불바람
흔들림에 대한 기억으로 흔들리며
불꽃은 타오른다

출렁출렁
빛 그림자
달빛도 풀린다
젖은 나무는
연기도 피워 보지만



재가
가볍다

 

▒ 죄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칼날처럼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날을 세워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죄의 날
빛나게
푸르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
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

 

▒ 섬


물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 닻


파도가 없는 날
배는 닻의 존재를 잊기도 하지만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

상처의 힘
상처의 사랑

물 위에서 사는
뱃사람의 닻

저 작은 마을
저 작은 집

 

 

▒ 섬이 하나면 섬은 섬이 될 수 없다
    -섬이 섬에게 보내는 편지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나와 나무 속으로 들어간 빛들이 태양을 그리워하며 하늘 쪽으로 가지를 뻗어 올립니다. 나무들의 모양, 꽃들의 빛깔들이 다른 것은 태양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풋살구가 살구나무 가지 쪽으로 튀어오르고 침묵 위에 떠 있던 말들이 침묵 속으로 다시 녹아드는 것도 그리움의 한 표현방식일 것입니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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