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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자연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
강한자는 살아남고 약한자는 죽는다는 자연 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 FAO는 <World Food Surveys>라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자료를 공표하고 있는데, 기아의 실태를 조금은 덜 심각하게 보거나 약간의 약관주의를 확산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
왜요?
대규모 지원국은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들이야. 그런 나라들에서 여론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그래서 FAO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FAO에 지원하는 것이 쓸떼없는 일로 여겨져, 부유한 나라들이 좀처럼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지원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현실을 미화할 수밖에 없어.
▒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분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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