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권정생 (녹색평론사, 2008년)
상세보기


▒ 인간세상을 구경만 할 수 있다면 고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란 남의 것을 구경하면서 동시에 내 인생도 남에게 보여줘야 한다. 따로따로 떨어져서 구경하고 구경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함께 부딪치며 밀치며 뒤얽혀서 연기를 해야 한다. 배우로서 연기를 한다는 의식도 없이 우리는 어쨌든 슬프거나 즐겁거나 쉴새없이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느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는 개의 모습대로, 닭은 닭의 모습대로, 모든 동물과 식물이 그들대로의 섭생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


▒ 들판에 자라는 보리는 봄보리와 가을보리가 있는데 가을보리를 봄에 심으면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가을에 심어 혹독한 눈보라를 견디며 자라야 이듬해 튼튼한 보리로 자라나서 알찬 열매를 맺는 것이 가을보리의 타고난 운명이다. 가을보리에겐 고통을 제외한 온실 같은 평화는 오히려 절망이며 죽음인 것이다.


▒ 평화란 역설일지 모르지만 죽음이며 파괴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싸움이란 삶이 끝났을 때라야 우리는 제대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인간을 만든다.


▒ 말의 낭비나 돈의 낭비는 모두가 거짓을 감추려는 인간의 권위와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똑같은 음식도 단돈 천원에 사먹는 것보다 만원에 사서 먹으면 위대한 장부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위대해 봤자 인간은 역시 졸장부밖에 되지 못한다.


▒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함께 있는 사회구조로서는 절대 민주주의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부자는 그 부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결탁을 할 테고 가난한 사람은 굶어죽을 수 없으니 자연히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도 목숨입니다. 살기 위하여서는 누군들 자기 몫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 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닭고기로 키우다 보니 닭의 품성을 잃어버리듯이 사람도 사람으로 키우지 않고 돈벌이 물건으로 키우니까 아이들이 자살을 하고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악마가 된 것이다.
 지금 세상엔 온전한 사람이 없다. 개는 개로 키워져 개로 살아야 하고, 닭은 닭으로 키워져 닭으로 살아야 하듯이, 사람도 사람으로 키워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지만 어떤 인간이든 그 시대와 역사를 비켜서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더욱이 혼란과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는 역사 앞에서, 더러는 영웅도 되고 뜻밖의 횡재를 얻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비극의 인생을 살다가 끝마친다. 수많은 고아가 생겨나고 과부가 생겨나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가 생긴다.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여지도 없이 개개인의 운명을 극과 극으로 바꿔놓고 만다.


▒ 인간구원은 하늘의 신이 하는것이 아니며 인간 구원은 어디까지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다.




▒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나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