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이태준 (창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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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가 완전히 다 달린 것은 담화보다 문장다운 맛을 더 받고, 토가 생략된 것은 문장보다 담화다운 맛을 더 받는다. 이렇게 받아지는 맛이 다른 것을 글 쓰는 사람들은 이용할 필요가 있다. 즉 문장으로 쓰는 말은 토를 완전하게 달아 문장감을 살리고, 담화로 쓰는 말은 호흡감이 나게 토에 농감을 부려 담화풍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 한 자의 문자, 한 마디의 말로 족할 수 있으면 그것은 최상의 표현이다. '족하다'는 것은 그 한 문자, 한 단어의 표면만이 아니라 그 뒤의 실제 힘, 즉 암시와 함축을 말함이다.


▒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代用) 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
 - 모파상


▒ 운문은 리듬이 주(主)요 뜻이 종(從)이다. 먼저 즐겁거나 슬픈 기분을 주고 사상은 나중에 준다. 알랭은 그의「산문론」에서 산문은 도보(徒步)요 운문은 무도(舞蹈)라 했다. 우리는 볼일이 있어야 걷는다. 도보는 실용적인 행동이다. 춤은 볼일이 있어 하는 행동은 아니다. 흥에 겨워야 절로 추어지는 것이다. 흥이 먼저 있고서야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다.


▒ 펠랑데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사회적 역할을 떠나서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즉 그는 일정한 목적을 향하여 일정한 사회적 코스를 밟는 성격자이다. 그러나 만일에 그가 성격자에 그치지 말고 그 성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혹은 반항하려고 하는 개성을 전연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성격자에게 성공의 월계관을 받드는 동시에 경멸의 조소를 보내야 마땅하겠다.
-정가표 인간, 최재서


▒ 먼저 든든히 지키고 나갈 것은 마음이다. 표현하려는 마음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정경이든, 무슨 생각이든, 먼저 내 마음속에 들어왔으니까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그 인물, 그 사건, 그 정경, 그 생각을 품은 내 마음'이 여실히 나타났나? 못 나타났나? 문장의 기준은 오직 그 점에 있을 것이다. 문자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 그 문장이 어찌 아름답지 않고 견딜 것인가?


▒ 여러 번 고쳤다. 글은 물론 나아졌다. 그러나 글만 자꾸 고쳐나가다가는 글보다 귀한 것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처음의 것'이란 처음의 글이 아니다.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신선함'을 가리킴이다. 글 만드는 데만 끌려나오다가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싱싱함'을 이지러뜨렸다면 그것은 도리어 실패다. 초등학생들의 글이 문법적으로는 서툴러도 차라리 솔직한 힘을 갖는 것은, 오직 '처음의 생각'대로, '신선함' 그대로 써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이라도 고치되 끝까지 구기지 말고 지녀나가야 할 것은 이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신선함'이다.


▒ 제재가 재미있어야 재미있고, 제재가 슬퍼야 슬플 수 있는 것은 신문기사뿐이다. 신문의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개인의 개성이 담긴 문장이란 제재가 반드시 슬퍼야 슬프고, 제재가 반드시 즐거워야 즐겁고, 제재가 반드시 굉장해야 굉장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재가 아무리 작고 평범한 것이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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